‘나이트메어 앨리’, 추한 욕망과 추접한 생존 본능
입력 2022. 03.22. 08:00:00

'나이트메어 앨리'

[유진모 칼럼] ‘나이트메어 앨리’(상영 중)는 1946년에 윌리엄 린지 그레셤이 발표한 소설을 이듬해 에드문드 굴딩 감독이 영화화한 것을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이 리메이크한 작품이다. 매번 기괴한 캐릭터를 기용한 판타지로 독특한 영역을 구축해 온 델 토로 감독으로서는 매우 드문, 크리처 없는 누아르이다.

‘지난 10년 영화 역사상 가장 충격적인 엔딩!’이라는 홍보 문구에 현혹되거나 델 토로 특유의 판타지를 기대한다면 실망할 터이지만 ‘뿌린 대로 거두리라.’라는 메시지와 인간의 저급한 욕망에 대한 경고만큼은 확실한 스릴러이다. 스탠턴(브래들리 쿠퍼)은 성공을 향한 욕망이 이글거리는 시골 청년이다.

홀아버지에 대한 트라우마로 증오에 가득찬 그는 어느 겨울 창문을 열어 노환인 아버지를 동사하게 만든 뒤 집에 방화하고 길을 떠난다. 떠돌던 중 클렘(윌렘 대포)이 이끄는 유랑극단에서 일자리를 얻는 한편 극단에서 독심술 공연을 펼치는 피트와 지나(토니 콜렛) 부부에게 독심술을 배우게 된다.

불법 공연을 단속하러 나선 지역 경찰을 독심술로써 따돌리면서 극단 내 그의 입지는 탄탄해지고, 전기 공연을 펼치는 몰리(루니 마라)의 마음을 사로잡는 데 성공한다. 알코올 중독자인 피트에게 교습비로 술을 주려다 실수로 에틸알코올을 줘 다음날 그가 사망하자 스탠턴은 몰리와 뉴욕으로 떠난다.

상류 사회에서 공연을 펼치던 그는 심리학자 릴리스(케이트 블란쳇) 박사를 통해 뉴욕에서 가장 위험한 거물 그린들을 알게 된다. 그린들은 갖은 악행으로 갑부가 된 후 죽은 정부와 사생아에 대한 그리움과 죄책감에 괴로워하고 있는 늙은이. 스탠턴은 마지막으로 그에게 희대의 사기극을 벌이는데.



이 영화는 대놓고 독심술과 강령술을 사기라고 명토 박는다. 스탠턴의 사기가 독심술에 그칠 때에는 공연이지만 강령술까지 가면 명백한 사기가 된다고 옛 동료들이 만류하는 식이다. 스승인 피트는 “스스로 신적인 능력을 지녔다고 믿기 시작하면 큰일난다. 신을 초월하려 하지 마라.”라고 충고한다.

그래도 질주를 멈추지 않자 몰리가 제동을 걸지만 “목사들도 주말마다 하는 일이다. 나도 영혼을 구해주는 것일 뿐.”이라며 정당화한다. 극단에는 ‘가장 힘센 사나이’ 브루노(론 펄먼), 거미 여인, 닭의 피를 마시는 기인 등 다양한 사기 캐릭터들이 있지만 공연의 수준에서 벗어나지 않는 원칙을 지킨다.

스탠턴이 극단에서 독심술 공연을 펼치기 전에 했던 일이 기인을 조련하는 것. 클렘이 알코올 중독자나 마약쟁이를 데려오면 피를 마시지 않으면 안 되게끔 훈련해 기인으로 둔갑시키는 것이다. 그건 인간은 물론 동물까지 학대하는 범죄 행위이다. 평소 인류애와 자연 보호를 부르대 온 델 토로답다.

그는 ‘헬보이’, ‘판의 미로: 오필리아와 세 개의 열쇠’,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 등에서 기이한 크리처와 현존할 수 없는 세계를 그려 왔다. 그러나 그가 추구하고자 한 건 그런 판타지를 통한 장삿속이 아니었다. 전쟁 등의 참혹한 현실 속에서 순수한 사람과 자연과 사랑을 지키자는 울부짖음이었다.

가장 상업적인 블록버스터 ‘퍼시픽 림’ 역시 환경 파괴가 인류와 지구에 어떤 재앙을 내리는지에 대한 메시지를 담았다. 이전 작품들이 환유와 은유의 화법을 구사했다면 이 누아르는 매우 현사실적이다. “사람들을 속이는 게 아냐, 사람들이 스스로를 속이는 거지.”라는 대사 안에 모든 뜻이 담겨 있다.



사람의 심리에는 파레이돌리아(변상증)라는 게 있다. 불규칙적인 현상이나 형상에 스스로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오래된 천에서 예수의 얼굴 그림이 나타났다고 주장하는 식이다. 코끼리 바위니, 거북 바위니 하는 등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믿고자 하는 걸 믿고, 그렇다고 우기고는 한다.

클렘은 그로테스크한 취미를 지녔다. 사생아 혹은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갓난아이의 사체를 수집해 진열하는 것. 그중 가장 아낀다는 게 에녹이다. 에녹은 구약 창세기에 등장하는 인물로 므두셀라의 아버지이다. 최초로 죽지 않고 하늘에 오른 승천자로서 하느님의 무한한 사랑을 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이 영화 속 에녹은 사람이라고 보기 힘든 흉측한 외양을 하고 있다. 이 괴물 같은 사체에 에녹이라는 이름을 붙인 의미는 두 가지로 풀이된다. ‘기형으로 태어나다.’에서 탄생은 축복이지만 기형은 저주이다. 따라서 클렘은 이 아이의 영혼에 대해 후세에서 매우 행복한 삶을 살라고 기도한 것이다.

다른 하나는 반어법의 스탠턴. 그는 잘생긴 외모에 엄청난 눈썰미를 타고났다. 뉴욕 상류층에서 성공할 수 있었던 비결이다. 심지어 그린들의 거짓말 탐지기와의 대결에서도 승리한다. 그에게는 거칠 것이 없었다. ‘천상천하 유아독존’이었다. 아니, 그렇다는 착각에 빠져 인식과 판단의 기준이 흐려졌다.

그에게 질려 몰리가 떠나려 하자 “선을 넘고서야 선이 보여.”라고 죄를 자백하듯 자신의 끝을 모르는 욕망을 시인하는 시퀀스이다. 온갖 죄악으로 갑부가 된 후에야 자신의 잘못을 뉘우친 그린들은 스탠턴의 미래였던 것. 벼랑 끝에 몰려 인간이기를 포기하는 표정을 짓는 쿠퍼의 마지막 연기는 정말 소름 끼친다.

최고의 사기꾼이라고 자부했던 스탠턴은 결국 매우 지적인 줄 알았던 사기꾼에게 제대로 당한다. 도주 중 시골의 한 유랑 극단에 흘러들어 간 그는 그곳에서 에녹과 자신이 클렘에게 팔았던 라디오를 발견한다. 그러고는 단장의 제안이 무엇인지 알면서도 살기 위해 승낙하며 에녹 같은 표정으로 미소를 짓는다.

[유진모 칼럼 / 사진=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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