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미집’ 전여빈이 가진 힘 [인터뷰]
입력 2023. 10.02. 07:00:00
[셀럽미디어 전예슬 기자] ‘해치지않아’ 전여빈, 한 마디 말에도 빛이 나는 배우. 2020년 영화 ‘해치지않아’로 만났을 당시 쓴 인터뷰 제목이다.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은은한 향기가 묻어나오는 사람이 있지 않은가. 긍정 에너지를 발산하다가도, 때로는 따스한 위로를 건네는. 단순한 질문에도 무릎을 ‘탁!’치게 만들고, 입가에 미소를 머금게 하는.

전여빈은 말을 참 잘하는 배우다. 그리고 경청하게 만드는 힘까지 가졌다. 듣고 있으면 ‘훅~’하고 빠져들게 만든다. 전여빈은 그런 힘을 가진 배우다. 3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뒤 다시 만난 전여빈은 여전히 한 마디 말에도 빛이 나는 배우였다.

데뷔 이후 쉼 없이, 꾸준히 작품 활동을 펼치고 있는 전여빈이 이번엔 영화 ‘거미집’(감독 김지운)으로 관객과 만난다. ‘거미집’은 1970년대, 다 찍은 영화 ‘거미집’의 결말만 바꾸면 걸작이 될 거라 믿는 김감독(송강호)이 검열, 바뀐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는 배우 제작자 등 미치기 일보 직전의 현장에서 촬영을 밀어붙이는 이야기를 유쾌하게 그리는 영화다.

“김지운 감독님이 시나리오를 보내주셨어요. 미도 역할에 함께 하고 싶다고 제안해주셨죠. 대본을 보자마자 정말 만나고 싶은 글이었어요. ‘파벨만스’나 ‘바빌론’ 등 영화 속 영화를 만든 장면에 대해 동경을 느끼며 ‘저런 영화에 출연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시네마천국’도 저에게 그런 감명을 준 영화에요. 저는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사람들, 마음을 모으는 사람들에게 갈망을 느끼고, 좋아하는 마음이 있었나 봐요. 그들과 함께이고 싶었죠. 세상에 좋은 것을 내놓을 때 저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어요. 그런데 정말 바라는 일이 왔어요. 더할 나위 없이 기뻤죠. 미도를 영화에서 만나면 과격하고, 저돌적으로 보이지만 저에게 미도라는 사람의 열정은 되게 예쁘고, 사랑스러웠어요. 사람이 태어나 살아가면서 순수한 열정을 가질 수 있다는 게 당연한 일인 것 같진 않거든요. 어느 순간 찾아올지도 모르는 일이죠. 미도를 봤을 때 그 순간에 직면한 사람 같았어요. 어떻게든 만나고 싶었죠. 그 사람을 잘 표현해내고 싶어서 기꺼이 참여하게 됐어요.”



전여빈이 연기한 미도는 재촬영을 밀어붙이는 신성필림 후계자이자 재정을 담당하는 인물이다. 그는 인물들 사이 엇갈린 목적이 충돌하며 나오는 앙상블이 곧 드라마가 되는 ‘거미집’에서 어디로, 어떻게 전개될지 모르는 예측불허 스토리에 힘을 보탠다.

“‘거미집’ 촬영이 ‘너의 시간 속으로’와 2~3개월 정도 중복됐어요. 저는 몸이 하나니까 체력적인 어려움이 있었으나 글에서 느껴지는 선명도가 달랐기에 구축하고, 표현하는데 있어 용이했죠. 민주, 준희, 미도는 또 다른 세상의 사람이었어요. 미도에서 느껴지는 굉장한 에너지가 있었죠. ‘불도저’ 같은 사람인데 거친 무세여서 남들을 헤치고 다니는 느낌은 아니고, 귀엽고 사랑스러운 불도저 같았어요. 작은 몸짓에서 포효 아닌 포효 같은 움직임도 그려지고, 우렁찬 에너지가 느껴졌죠. 얼굴은 되게 어려 보이는데 나이를 가늠할 수 없는 태도를 가진 사람이 있잖아요. ‘짬바(짬+바이브)’가 느껴지는 사람, 그런 사람이 연상돼서 나온 것 같아요.”

미도는 당시 영화 현장에서 드문 여성 인력이다. 가장 힙한 산업인 영화계 한가운데에 있는 멋을 보여주기 위해 전여빈은 매니쉬한 숏컷에 쇼트 레더 그린 재킷을 덧입혀 캐릭터를 완성해냈다.

“헤어스타일은 통가발을 썼어요. 미도는 숏컷이길 바랐죠. ‘너의 시간 속으로’ 촬영만 아니었으면 진짜 숏컷을 했을 텐데 그럴 수 없는 상황이라 부득이하게 가발을 썼어요. 최대한 자연스럽고, 미도에게 어울리는 가발을 피팅 하기 위해 가발 자체에도 커트를 많이 넣었죠. 드라이도 해보고, 마침내 찾은 헤어가 미도의 헤어스타일이었어요. 룩의 경우, 미도가 비전형적인 사람이라고 봐서 어떤 시간의 경계에서 탈바꿈을 해가는, 그걸 대변하는 인물로 설정했어요. 이민자(임수정)와 한유림(정수정)이 개척하며 자신을 선택한다면 영화 밖에서 주도적인 선택을 하고, 자신의 욕망에 대해 투명하게 돌진하는 사람이 미도가 아닐까 싶었죠. 추상적인 바람은 미도의 모든 움직임이 자유로웠으면 했어요. 불편한 신발도 아니고, 메이크업도 짙어선 안 된다고 생각했죠.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의견이 메이크업팀, 분장팀, 의상팀과도 일치했던 것 같아요. 바지의 경우, 자연스러운 나팔바지를 택했어요. 걸음걸이에서 바람이 느껴질 것처럼 준비했죠. 셔츠 깃도 나풀거리는 것이었어요. 미도와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죠. 그리고 미도의 집념이 느껴지는 건 가죽 재킷이었어요. 실장님이 잘 그려주셔서 이견 없이 따라갈 수 있었죠. 룩이 단 한 번에 결정된 건 아니에요. 몇 십장의 셔츠 원단을 둘러보고, 조끼도 열 몇 벌 이상 입어보고 나오게 된 미도의 룩이죠.”



앞서 전여빈은 영화 ‘밀정’ ‘인랑’에서 짧은 출연을 통해 김지운 감독과 인연을 맺은 바. 틀에 갇히지 않는 연기를 보여준 전여빈에게 무한 신뢰를 가지고 있던 김지운 감독은 그를 신미도 역으로 불러냈다.

“‘밀정’과 ‘인랑’ 때 감독님에게 연기 디렉션을 받은 건 아니었어요. 그림적인 신들이 많았기에 언젠가 감독님의 디렉팅을 받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을 했죠. 그 기대와 바람이 이번 작품에서 실현할 수 있게 됐어요. 이번 작품에서 감독님이 ‘전여빈은 마음으로 연기하는 배우라 자유로울 수 있게 내버려뒀다’라고 하셨어요. 어떤 톤앤매너만 잡아주셨죠. 그렇게 해주신 게 느껴졌어요. 저는 배우로서 자유로움도 얻으면서 동시에 또 다른 책임감도 느꼈어요. 감독님이 1테이크부터 10테이크까지 간다면 집중을 부어 살피시거든요. 1에서 10까지 같은 연기를 하는 게 아닌, 저 스스로 미도로 어떻게 나아갈 수 있는지, 상대방과 어떻게 공기를 만들 수 있는지 계속 주의했어요. 감독님이 주시는 톤앤매너, 힌트들이 있잖아요. 감독님이 생각하는 것들을 던져줬을 때 놓치지 않고 살을 붙이려고 했어요. 또 감독님은 테이크를 짧게 가는 분이 아니에요. 여러 테이크를 시도하는데 제가 느낀 부분은 무조건 집중력과 싸움, 또 집요함이었죠. 제가 이것에 응수하지 못하면 안 되겠다, 절대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매 테이크 마다 바짝 긴장하고, 집중하되 최대한 미도로서 자유롭게 노력했던 것 같아요. ‘거미집’과 김지운 감독님과 함께 작업한 시간은 온 시간이 축약된 것처럼 느껴졌어요. 공기, 시간, 쏟아 붓는 에너지가 밀집되어 있는 걸 느꼈어요.”

목표를 위해 직진하며 강렬한 에너지를 뿜어내는 미도로 분한 전여빈. 그의 직진하는 에너지가 담긴 연기를 송강호 또한 칭찬을 아낌없이 쏟아낸 바.

“강호 선배님은 정말 많이 용기를 주셔서 가슴 벅차게 기뻐하면서도 담담하게 받아들이려고 했어요. 강호 선배님의 연기가 어마무시 하잖아요. 표현력과 에너지가 제가 여태 현장에서 본 그 어느 배우보다 노력하시는 분이셨어요. 노력하고, 집중하고, 자신의 모든 걸 아낌없이 내어던지는 분. 노력과 아웃풋을 보여주신 선배님이셨어요. 선배님의 멋진 모습을 보면서 스스로 매일 반성하게 됐죠. 닮고 싶다는 마음도 들었어요. 매일, 매 순간 마음을 고쳐먹게 되고, 마음에 평수가 있다면 1mm씩 늘어나는 느낌이 들었죠.”



열정, 불도저, 순수함. 미도를 표현하는 단어를 꼽자면 이 세 가지가 아닐까. 이 세 단어는 ‘거미집’의 미도만큼 전여빈에게서 느껴졌다.

“미도는 무언가를 사랑하는 일을 만날 때 거칠지만 많이 서툰 것 같아요. 서툴기 때문에 남을 헤치려는 건 아닌데 우선순위가 있다 보니 상처받게 하는 경우도 있는 것 같았죠. 30대의 전여빈은 어떤 좋아하는 것에 대한 열정이 있는 사람임이 분명해요. 함께하는 사람들에게 조금 더 유연한 표현을 하고 싶어 하죠. 정확하게 유순했으면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어요. 결국에는 일을 해나가며 느끼는 건 세상을 살아가는 것도 그렇고, 갓난아기 때부터 살아오기까지 내 힘으로 한 게 없기 때문이죠. 도움을 받고 성장하며 자라오고 있잖아요. 다들 20살이 지나면 성인이라고 하는데 저는 다 성장한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신체적인 성장은 끝날 수 있지만 인간으로서 성장은 생에 끝까지 간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렇기에 주변 사람들이 중요한 것 같아요. 그 사람들과 비교적 지혜롭고, 멋있게 소통하는 방법이 뭘까 궁리해보려고 해요. 괜찮은 방법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것 같고요. 저는 미도를 믿어요. 과정을 거치고 있는 것이지 전부는 아닐 거예요. 과도기 같은, 사춘기를 겪는. 그때는 미운 구석도 많잖아요. 정제되지 않은 뾰족한 모습도 많고. 어쩌면 미도도 그런 모습일 수 있어요. 조금 더 지나갔을 때 훌륭한 여성, 제작자가 되어 있을 거라 믿고 있어요.”

전여빈은 ‘죄 많은 소녀’에서 자살한 친구의 죽음에 가해자로 몰린 10대의 초상을 그려 한국의 신인여우상을 석권한 바. 이후 영화 ‘해치지않아’ ‘낙원의 밤’, 드라마 ‘멜로가 체질’ ‘빈센조’ ‘글리치’ 등 작품으로 자신만의 필모그래피를 넓혀가고 있다. 매 작품, 한 걸음 한 걸음 발을 내딛으며 성장하고 있는 그가 앞으로 보여줄 연기는 어떤 모습일까. 무엇이 됐든 ‘상상이상’이지 않을까.



“‘죄 많은 소녀’는 29살 때 찍었어요. 저는 저를 믿어주고 싶은 게 있어요. 좋은 연기를 해내고 싶어서 꽤 노력하는 배우라고 생각하죠. 물론, 노력하지 않는 배우는 단 한 명도 없겠지만요. 조금씩 그 현장에서 제가 만나게 되는 좋은 사람들 덕분에 성장해나가고 있어요. 제가 주로 하는 말도 ‘인복이 좋은 것 같다’고 해요. 주변에 좋은 사람들, 귀인들을 만나거든요. 그분들을 통해 제가 직간접적으로 얻을 수 있었던 배움들이 많았어요. 살을 붙여주시고, 혹은 미운점, 못난 점도 사랑할 수 있는 시야를 주셨죠. 아집이나 고집을 던지고, 탈바꿈할 수 있도록 제 마음 자체를 바꾸게 하는 날들도 있었어요. 연기라는 게 함께 해나가는 일이기 때문에 하나의 결과물을 만들기 위해 많은 사람들을 만나요. 그러면서 많이 단련되고, 흡수되죠. 갓난아기에서 이제 막 걸음마를 하려고 하는 게 아닌가 싶어요. 함께하는 사람들, 직업 자체를 소중히 여기고 있기에 길게 보고 싶죠. 직업 자체가 ‘존재’처럼 느껴지기도 해요. 생명처럼 느껴진다고 해야 할까요? 방치하면 생명력이 없어지는 것처럼 이 직업 자체가 그런 것 같아요. 어떻게 하면 이것을 잘 돌볼 수 있을까, 함께 걸어갈 수 있을까 고민하죠. 그렇다고 매몰되고 싶진 않아요. 건강한 균형을 이루면서 멀리까지 걸어갈 수 있길 바라요.”

[셀럽미디어 전예슬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바른손이앤에이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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