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에스더는 외모 지상주의자인가?
입력 2022. 07.04. 14:13:27

여에스더

[유진모 칼럼] 가정의학과 전문의 겸 사업가이면서 방송에서도 맹활약 중인 여에스더(57)가 잇단 외모 지적으로 시청자들의 불쾌한 반응을 야기하고 있다. 지난 3일 방송된 KBS2 ‘사장님 귀는 당나귀 귀’에서 기부금을 전달하기 위해 모교인 서울대학교를 방문한 여에스더는 김웅한 교수를 보고 그의 외모를 평가하는 발언을 서슴지 않은 것.

그녀는 “미간 주름과 눈가 주름이 더 생겼지만 다행히 머리카락은 유지한다.”라고 말했다. 친한 사이인 만큼 허물없이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그녀가 타인의 외모에 지나치게 관심을 쏟는 게 문제. 이전에도 자신의 회사 직원들에게 “얼굴이 너무 부었다. 턱이 두 개이다.” 등의 조심스럽지 않은 발언을 한 ‘전력’이 있는 것.

이러한 적나라한 외모 평가는 시청자들의 비난을 자아냈고, 결국 공식적으로 사과한 바 있다. 부정적인 반응에도 불구하고 자꾸 외모 ‘지적질’을 하는 이유는 그녀의 버릇이나 의식인가, 아니면 의도된 연출인가? 즉, 예능 프로그램이라는 특성상 차별적인 캐릭터를 구축하기 위함인가? 가능성을 열어 놓고 한번 추리해 보자.

만약 연출자와 그녀가 뜻을 모아 캐릭터를 만들기 위해 그랬다면 동시간대(오후 5시) 시청률만 놓고 볼 때 성공인 듯하다. 4.7%의 MBC ‘복면가왕’을 제치고 6.2%의 시청률을 올린 것. 하지만 당일 14.6%로 최고 시청률을 올린 저녁 9시대의 SBS ‘미운 우리 새끼’나 8.6%를 올린 6시대의 KBS2 ‘1박2일’을 보면 상황이 달라진다.

일요일 오후 지상파 방송사 예능 프로그램으로서 6%대의 시청률이라면 매우 성공적이라고 하기 쉽지 않다는 것. 물론 요즘같이 다중 플랫폼과 다채널 시대에 그 정도라면 만족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운 우리~’가 엄존하는 데다 ‘사장님 귀는~’의 절반의 성공이 오롯이 여에스더의 공로라고 할 수 없다는 게 팩트.

이른바 ‘막장 드라마’라는 정체성에 대해 ‘욕하면서 본다.’라는 표현을 쓴다. 저질이고 과장이라는 걸 알면서도 거기에 대해 욕을 하면서 스트레스를 푼다는 의미이다. 하지만 그건 오래전 이야기이고, 시대는 최첨단 디지털 모드로 바뀌었다. 대중이 예능을 소비하는 건 긴장감을 풀고, 여유를 즐기고자 함이지 흥분과는 거리가 멀다.

욕을 하는 건 어느 정도 긴장이 동반된다. 이 시대의 소비 성향은 오로지 릴렉스이지 텐션에 있지 않다. 오죽하면 긴장, 긴장 상태라는 본뜻을 가진 텐션이 요즘에는 (긍정적)흥분이라는 의미로 바뀌어서 유통될까? 따라서 여에스더가 욕을 먹는 건 시청률 상승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 해가 되면 될 뿐, 득이 될 게 전혀 없다.

시청자들이 욕을 하면서 계속 보는 게 아니라 욕을 하다 지쳐서 채널을 돌리게 되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동시간대 유일한 경쟁 프로그램인 ‘복면가왕’이 지난번 이창명 논란처럼 출연자 섭외에서 계속 잡음이 일고 있는 데서 알 수 있듯, 이제 신선도가 많이 떨어졌다는 데서 반사 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분석도 가능하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의도였다면 지금이라도 수정하면 된다. 예능에서 연출자나 출연자가 캐릭터를 설정하려고 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캐릭터를 창출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기 때문이다. 다만 시청자의 반응이 안 좋다면 수정하면 된다. 게다가 ‘사장님 귀는~’과 KBS라는 정체성과 외모 지상주의는 안 맞는다.

이 프로그램의 기획 의도는 ‘대한민국 보스들의 자발적 자아 성찰 프로그램’이다. 여에스더의 잇단 타인 외모 지적은 ‘자발적 자아 성찰’은 차치하고라도 지나친 오지랖을 넘어선 ‘과한 지적질’이라는 비난에서 자유롭기 쉽지 않다. 자아 성찰은 고사하고 타인의 외모만 비하하려 들지만 과연 자신은 그런 ‘지적질’에서 자유로울까?

홍혜걸은 그녀의 차림새에 대해 “남사스럽다. 내일모레 환갑인 아줌마가 저런다.”라고 불만을 표시한 바 있다. 물론 그의 발언은 작가가 일방적으로 써 준 것일 수도, 의례적인 갈등 연출일 수도 있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억지스럽거나 시대착오적인 면은 없지 않다. 환갑이 아직 3년 남은 것을 떠나 이제 환갑이 노인은 아니기 때문.

그런데 여에스더의 반응 역시 구시대적이기는 마찬가지. 그녀는 “내일모레 환갑 아줌마라는 말을 자꾸 하니까 같이 못 사는 것이다.”라며 불평했다. 불쾌함은 이해가 된다. 하지만 같이 살고 못 살고를 논의할 시점도, 그럴 공간도 아닌 것 역시 맞다. 그냥 예능이라 티격태격하는 걸 보여 주고자 했다는 것 외의 의미가 없다.

그런데 만약 그녀가 성격적으로나 이념적으로 진짜 외모 지상주의자라면? 그렇다면 그것 자체야 개인적인 성향이니 상관없겠지만 공영방송의 예능 프로그램 고정 출연자로서는 그다지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할 수 있겠다. 사실 모든 동물들이 상대방의 외모를 따진다. 모든 동물은 종족 보존에 민감하기에 짝짓기에서 특히 그렇다.

다른 동물보다 민감한 인류는 더욱더 외모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는 구조이기는 하다. 옷부터 각종 액세서리까지 패션에 민감한 것 역시 외모를 중요시하는 풍습 탓이다. 아무래도 못생긴 것보다는 잘생긴 게 낫다. ‘기왕이면 다홍치마.’라고 꾸밀 수 있으면 꾸미는 게 좋다. 가능한 한 눈으로 보기 좋은 게 좋은 것이 아닐까?

그러나 외모 지상주의는 곤란하다. ‘외모가 뛰어난 게 최고이다.’라는 이념은 기존의 건전한 가치관을 흔들어 오로지 육체적인 가치관만 추구하는, 굉장히 천박한 통념을 조성할 수 있는 것이다. 만약 외모 지상주의가 어느 정도 영역을 인정받는 다른 ‘주의’만큼의 값어치를 갖게 된다면 인류는 교과서와 백과사전을 바꿔야 할 것이다.

여에스더는 제 회사의 보스로서 직원들을 능력으로 평가해야지 외모에 집착해서는 곤란하다. 그냥 회사 동료나 친한 언니로서는 그럴 수 있겠지만 오너나 CEO라면 상황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사람으로서 완벽한 미모는 없다. 시대에 따라 미의 기준이 바뀌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사람 자체가 내적, 외적으로 미완성이기 때문이다.

[유진모 칼럼 / 사진=뉴시스, 여에스더 유튜브 화면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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