뱃사공의 사과문에서 사과 찾기
입력 2022. 05.16. 10:50:20

뱃사공

[유진모 칼럼] 래퍼 뱃사공(36, 본명 김진우)이 불법 촬영 의혹과 관련해 두 차례에 걸쳐 사과했지만 여론은 사과를 별로 못 느끼는 분위기이다. 뱃사공은 지난 13일 오전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물의를 일으켜서 미안합니다. 제가 잘못한 부분에 대해서 사과하고 반성하겠다.”라고 짤막하게 입장을 밝혔다.

그런데 무슨 일인지 오후에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다시 한 번 죄송합니다. 피해자께 깊이 사죄드립니다.”라는 글을 재차 올렸다. 또한 “피해자가 고소하지는 않으셨지만 죗값을 치르는 게 순리라고 생각되어 경찰서에 왔다. 성실히 조사받고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평생 반성하겠다.”라고 개과천선의 태도를 보였다.

과연 얼마나 진심일까? 그의 반성의 액션은 지난 10일 래퍼 던밀스의 아내 A 씨의 폭로가 기폭제가 되었다. 그녀는 자신의 인스타그램을 통해 한 래퍼의 불법 촬영 및 공유 혐의를 비난했다. 해당 래퍼가 인스타그램 DM(다이렉트 메시지)으로 여자를 만난 후 ‘몰카’ 영상을 찍어 주변에 공유했다는 것.

A 씨는 “DM(다이렉트 메시지)으로 여자 만나고 다닌다는 것까지만 이야기하네? 그 뒤에 몰카 찍어서 사람들한테 공유했던 것들은 얘기 안 하네? 양심적으로 반성했으면 그런 말도 방송에서 못 했을 텐데, 그런 게 전혀 없었나 보네? 그만하면 좋겠다, 점점 경찰서에 신고하고 싶어지니까.”라고 분노를 숨기지 않았다.

거기서 그친 게 아니라 “정준영이랑 다른 게 뭐지? 그 동생(뱃사공에 의한 피해자) 너무 힘들어서 극단적 시도까지 했었는데.”라고 분기탱천한 태도를 보였다. 먼저 뱃사공이 A 씨의 폭로 이후 3일 만에 사과문을 게재했다는 점부터 그리 명쾌해 보이지 않는다. 잘못을 뉘우쳤다면 즉각 반응했어야 마땅하다.



여론의 추이 등을 살펴본 후 태도를 결정했다는 추측이 가능해지는 대목이다. 게다가 그는 처음부터 ‘죗값을 치르겠다.’라는 자숙의 태도를 보인 게 아니다. 두 번째 사과문에서 그렇게 바꾼 것이다. 이는 경찰의 수사를 피할 수 없다는 판단이 들었기 때문에 마치 자수하는 듯한 분위기를 연출했다는 의혹에서 벗어나기 쉽지 않다.

게다가 두 번의 사과문, 특히 첫째 사과문이 매우 간결하다. 물론 사과문이라고 주야장천 길어야 진심이 담기는 게 아닌 건 맞다. 그런데 짧든, 길든 그게 중요한 게 아니고 문제는 행간에 담긴 진실성이다. 그는 첫 사과문에서 “제가 잘못한 부분에 대해서 사과하고 반성하겠다.”라고 썼다.

이는 A 씨가 지적하고 비난한 내용 중 자신이 잘못한 부분이 없다는, 반대급부의 의미로 해석할 여지가 있다는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물론 주저리주저리 변명을 늘어놓지 않은 점은 진실성이 어느 정도 엿보이기는 한다. 인간이 완벽하지 않은 관계로 법에도 허점은 있고, 사회 구조에도 맹점은 존재한다.

그래서 법정에서는 ‘정상 참작’이라는 게 엄존한다. 하지만 성범죄, 특히 여성의 동의를 얻지 않은 남성의 일방적인 범죄와 아동을 대상으로 한 범죄에는 그런 게 적용되지 말아야 하는 게 정상이라는 게 대다수의 의견이다. 우리는 근래 가장 흉악한 성범죄라고 하면 ‘정준영 사건’과 ‘n번방 사건’을 떠올린다.

A 씨는 뱃사공을 정준영에 비유했다. 연예인이라는 이유도 한몫했을 것이지만 뱃사공의 행위에 대한 피해자의 고통이 그만큼 엄청났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왜냐하면 극단적인 선택까지 시도했을 정도이니까. 그런 천인공노할 범죄였다면 사과와 자수에 대한 심사숙고가 지나치게 길었다.

즉각적으로 사과하고, 직각적으로 자수했어야 마땅했다. 뱃사공의 눈에 보이지 않는 또 다른 잘못은 래퍼에 대한 이미지 실추이다. 일반적인 가수나 래퍼를 굳이 구분할 필요는 없지만 국내에서 랩이 대세로 떠오른 이후 유독 래퍼의 범죄 행위가 두드러져 보이기 때문이다.



물론 랩의 본고장인 미국에서 우리보다 먼저 래퍼들의 일탈적 행위와 가공할 범죄가 만연됨으로써 이미지가 그런 쪽으로 기울어진 배경도 무시할 수 없기는 하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다수의 흑인이나 히스패닉까지 어울려 사는 나라가 아니다. 문화도 다르다. 랩의 장점은 받아들이되 부차적인 부정적 문화까지 배워서는 곤란하다.

랩이 메인 스트림으로 진입할 수 있었던 배경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자유와 저항 정신을 빼놓고는 이야기가 곤란하다. 힙합은 할렘을 중심으로 탄생한 문화이다. 인종 차별에 시달리고, 가난해서 못 배운 탓에 극빈의 생활이 악순환되는 대물림의 반복적, 차별적 삶에 찌든 흑인들에게서 시작되었다.

하지만 가난하고 무식하다고 인격과 영혼마저 피폐한 것은 아니다. 그들에게도 자유롭고 싶은 갈망과 나름의 문화를 즐기고 싶은 예술혼은 엄존했다. 그래서 물려받은 헐렁한 옷을 입고, 비싸지는 않지만 나름대로 음악을 재생할 수 있는 소형 오디오를 들고 거리로 나와 그들만의 즉석 배틀로 퇴락한 삶을 위무했던 것이다.

뱃사공의 사과와 자수에서 결정적인 것이 누락된 점도 그에 대한 시선을 곱지 못하도록 만든다. 바로 피해자에게 직접 사과하겠다거나, 사과했다거나 하는 내용이 없는 것과 더불어 피해자가 하루빨리 상처를 씻고 일상으로 되돌아올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돕겠다는 의지가 전혀 안 보인다는 점이다.

그가 연예인이기 때문에 범죄에 대해 대중에게 사죄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피해자에게 양심적인 진심을 보이고 고통을 이겨 낼 수 있도록 최대한의 성의를 보이는 게 우선이다. 법의 단죄와 피해자의 통증은 함수 관계이면서도 동상이몽일 때도 비일비재하다.

[유진모 칼럼 news@fashionmk.co.kr /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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