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철’ 염혜란, 연기력 증명한 ‘동물적인 감각’ [인터뷰]
입력 2021. 03.04. 16:18:40
[더셀럽 전예슬 기자] 압도적이다. 시시각각 변하는 감정까지 섬세하다. 진실에 다가갈수록 서늘한 표정을 짓는 배우 염혜란의 새로운 얼굴이다.

영화 ‘빛과 철’(감독 배종대)은 남편들의 교통사고로 얽히게 된 두 여자와 그들을 둘러싼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제21회 전주국제영화제, 제43회 서울독립영화제, 제24회 탈린블랙나이츠영화제 등 국내외 유수 영화제의 러브콜을 받았다. 염혜란은 시나리오를 읽자마자 ‘소용돌이’ 안으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시나리오 자체가 매력적이었어요. 낚시를 하는데 ‘잡혔나?’ 하고 봤더니 고구마줄기처럼 뭉텅 올라오는 느낌이었죠. 가면 갈수록 충격적인 느낌이었어요. 마치 소용돌이 안으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을 받았죠. 강렬한 그 느낌이 너무 좋았어요. 여자 셋이서 이야기를 풀어가는 것도 좋았고, 분량도 마음에 들었어요. 처음부터 끝까지 변화를 가지면서 쭉 존재하는 인물로 있는 게 매력적이었거든요. 감독님에게서도 이유 있는 자신감이 느껴졌어요. 믿음이 갔죠. ‘작품에 고민을 많이 하셨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같이 하게 됐습니다.”

염혜란은 극중 교통사고 후 의식불명이 된 남편과 남은 딸을 위해 고단한 삶을 괜찮은 척 살지만, 누구에게도 말 못 할 사정을 품은 영남 역으로 분했다. 연극, 드라마, 영화 등 장르를 섭렵한 그는 여태 보여준 적 없는 서늘한 얼굴을 보여주기도. 특히 배우 인생 첫 영화제 수상을 거머쥔 그다.

“행복한 게 그거예요. 다양한 모습을 봐 주셨구나, 그래서 제일 행복했죠. 저의 다른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작품이었어요. 저 또한 ‘어떤 사람이야’라고 스스로 규정지었는데 객관적으로 봐주시는 분이 서늘한 눈빛을 봐주셨다고 하니까 ‘나에게도 그런 눈빛이 있었나?’ 싶었죠. 그래서 더 하고 싶었어요. 다양하게 보이는 게 시대적인 변화도 있는 것 같아요. 저 같이 생긴 사람이 항상 아줌마 역할만 하는 것도 아니고, 지적인 역할도 할 수 있듯이. 시대적 변화에 쓰임을 당해 환영하고, 수혜를 받고 있는 것 같아요. 하하. 라미란 선배님이 여담으로 ‘우린 시대를 잘 만났어’라고 하시더라고요. ‘저도요’라고 얘기했던 기억이 나요. (웃음)”



염혜란의 연기를 향한 동물적 감각은 ‘빛과 철’을 통해 드러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차근차근 쌓아온 연기 내공이 동물적 감각과 격돌하며 숨 막히는 감정의 스펙터클을 선사한 것. 감정의 명과 암, 그리고 흐름을 세세하게 그려냈어야 하는 영남 역을 어떻게 접근했을까.

“영남은 원래 미용 일을 했던 사람이에요. 그 장면이 나와서 좋았죠. 슬픔에만 빠져있고, 프레임에 갇힌 사람이 아니고, 일이 있었던 사람이에요. 영남이 처음부터 바스락거리고, 얼음장 같진 않았을 것 같았어요. 이용 일을 하면 사람들과 소통했던 사람일 텐데 그 사건으로 인해 피폐해져 슬프게 다가오더라고요. 전문직이었던 사람인데 사고를 당하면서 사고가 났던 직장에서 근무한다는 게. 일터에서 빈번히 일어나는 사고를 지켜보고, 사고 관련자를 매일 보고, 해결되지 않은 사람들을 대면할 때 그 여자의 마음은 어땠을까 하면서 영남을 생각했어요.”

배종대 감독의 치밀한 디렉팅도 돋보인다. 배 감독의 디렉팅은 다양한 인물들의 조각난 진실들이 온전히 맞춰질 때 장르적 쾌감을 선사한다. 이는 촬영 전, 상대 배우와 사전 미팅과 대본 리딩 없이 만들어진 ‘날 것 그대로’였다.

“분량뿐만 아니라 주인공을 하고 싶었던 이유 중 하나는 대본을 나누고 싶었던 마음이 있었어요. 함께 만들어가는 걸 하고 싶었죠. 영화에 대한 의견을 나누고, 얘기도 들어보고 싶었거든요. 그 전까지는 그런 기회가 많지 않았어요. 각자 준비해 와서 한 적이 많았죠. 그런 것에 대한 갈망이 있었어요. 주인공을 하면 같이 만들어 갈 수 있지 않을까하면서 욕심이 났어요. 그런데 배 감독님이 아예 안 만났으면 좋겠다고 하시더라고요. 작품에 대한 얘기는 많이 하되 각자 역할로 살다 상대방을 만났으면 좋겠다고 하셨어요. 이번 경우는 조금 특수했죠.”



‘빛과 철’ 개봉에 앞서 염혜란은 의도치 않게 드라마 ‘경이로운 소문’, 영화 ‘새해전야’ ‘아이’까지 다양한 장르의 작품으로 대중들과 만났다. 물론 작품에 들어간 시기가 각각 다르겠지만 그 누구보다 ‘열일’ 행보를 걷고 있기에 동시에 작품 촬영이 진행된다면 마인드 컨트롤 또한 필요할 터.

“이 작품은 2018년 12월에 촬영을 했어요. 다른 작품과 같이 하고 있었죠. (연기를) 바꾸는 것도 힘들더라고요. 이 작품을 하다가 겹쳤을 때 어떻게 바꿔야할 지 힘들었어요. 그래서 작품에 누가 될까봐 선배님들에게 여쭤봤죠. ‘다들 그렇게 해’라고 하시더라고요. ‘조연들은 그렇게 해야지, 어떡하겠어’라고. 그렇기에 최대한 시간 분배를 잘하려고 해요. 물리적인 시간 안에서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을 거고요.”

2000년 연극 ‘최선생’으로 데뷔한 염혜란은 매 작품마다 결이 다른 연기를 선보이며 ‘믿고 보는’ 배우로 자리매김했다. 이 수식어를 배반하지 않는 염혜란. 그는 “오래 연기하는 게 목표”라며 진심 어린 소망을 전했다.

“저는 처음에 배우를 화려하게 생각했어요. 되돌아봤을 때 ‘왜 배우가 되고 싶냐’라고 물으시면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끼치고 싶다’라고 답했죠. 한 마디로 ‘잘 나가는 배우’가 되고 싶었어요. 힘이 생기면 많이 보여주고, 보러오니까 인지도 있고, 대중적인 배우가 되고 싶었던 거죠. 지금은 달라졌어요. 배우 인생을 길게 봤을 때 인지도가 중요한 것 같진 않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오래 연기하는 게 목표에요. 나문희 선생님처럼 오래 하고 싶어요. 그렇게 하기 위해선 나쁜 짓을 안 해야겠죠? 대중들이 한 번 실망하기 시작하면 연기를 못하게 되니까요. 길게 연기를 한다는 건 삶을 잘 살아내서 오래하는 것 같아요. 삶을 잘 살아서 좋은 연기를 하는 게 목표에요.”

[더셀럽 전예슬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찬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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