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비규환' 최하나 감독 "토일=정수정 확신, 우리의 과제는 단 하나였다"[인터뷰]
입력 2020. 11.20. 16:01:39
[더셀럽 박수정 기자] 영화계에 90년대생이 온다. 청춘 감독이자 여성 신예 감독의 계보를 이을 또 한 명의 기대주다. 한국예술 종합학교(한예종) 영상원 영화과를 졸업한 후 제작사 아토ATO와 함께 첫 장편 영화 '애비규환'을 내놓은 1992년생 최하나 감독의 이야기다.

'애비규환'은 최하나 감독이 한예종 졸업 작품으로 쓴 시나리오다. 영화진흥위원회 독립영화 장편 제작지원 사업에 선정돼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됐다. 첫 장편 데뷔작을 선보인 최하나 감독은 "언론 배급 시사회가 정말 큰 산 같았다. 처음이니까. 큰 산을 넘고난 후 리뷰들이 올라오는 걸 보니까 조금 실감이 난다. 더 많은 사람들이 보고 의견들이 나올 텐데 궁금하고 기대가 된다"며 들뜬 마음을 드러냈다.

'애비규환'은 5개월 차 임산부 토일(정수정)이 15년 전 연락이 두절됐던 친아빠와 집 나간 아이 아빠를 찾아 나서는 이야기다. 이 영화는 혼전 임신, 재혼 가정, 세대 갈등까지 현실 밀착형 소재를 무겁지 않게 풀어낸다.

"'애비규환'은 졸업작품으로 처음 쓴 시나리오였어요. 장편 시나리오라고 해서 굳이 상업 영화에서 다루는 소재들을 상상하고 싶진 않았어요. 내가 좋아하고 가장 닮은 영화가 뭘까를 생각했죠.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화두가 '가족'이더라고요. '콩가루 가족'이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쓰기 시작했는데 처음 쓸 때는 막상 쉬웠어요. 완성만 하면 되는 거니까. 그런데 수정을 하면서 보니까 가족이라는 주제가 생각보다 정말 힘들더라고요. 쓰기 쉬운데 잘 쓰기는 어렵더라고요. 프로덕션에 들어간 후 제대로 완성하기 까지 정말 힘들었어요."

'애비규환'은 지난해 여름 촬영을 모두 마쳤다. 영화의 주 배경은 최하나 감독의 고향인 대구다. 최 감독은 "7살 때까지 대구에 살았었다. 이번에 영화 제작이 확정된 후에 대구를 다시 방문했다. 시나리오를 쓰면서 대구 곳곳을 돌아다녔다. 마침 대구에 지하철 3호선이 개통됐더라. 모노레일 타는 게 진짜 재밌었다. 사실 모노레일 타는 장면이 5번 이상 나왔었는데 1번으로 줄인 거다. 그 정도로 모노레일이 매력적이었다. 도시를 더 매력적으로 보이게 하더라. 3호선 모노레일을 타고 대구를 바라봤는데 외국에 온 기분이었다"며 촬영 당시를 떠올렸다.

그러면서 최 감독은 "코로나19 이전에 촬영을 모두 마쳤다. 만약 올해로 미뤄졌다면 아예 제작이 무산됐을지도 모른다. 대구 영화니까. 더 그랬을 거다. 작년에 찍을 수 있어 다행이었다. 천운이라고 생각한다"라고 덧붙였다.



90년대생 감독, 그리고 94년생인 배우 정수정과의 만남으로도 크게 주목받았다. 최하나 감독에게 첫 장편 영화였고, 정수정에게는 첫 주연작이자 첫 영화였다.

"(둘 다 처음이었지만) 걱정은 없었어요. 수정 씨가 연기가 처음은 아니니까. 시트콤 '하이킥'에서 연기하는 걸 보면서 센스가 좋은 배우다라고 생각했어요. 좋은 배역을 맡은 걸 보고 싶다는 욕망도 있었고요. '애비규환'으로 만나기 전 팬일 때도 그랬고요. 그런 마음이 항상 있었어요. 제가 응원하던 배우였죠. 만났을 때 일단 말이 통한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확신이 생겼죠. 우리의 과제는 단 하나였어요. '토일이를 어떻게 하면 흥미롭게 만들까?'. 서로 처음이었기 때문에 더 의지하고 재밌게 작업을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애비규환'의 토일과 어울리는 배우로 왜 정수정을 떠올렸을까. 최하나 감독은 "미팅을 하러 왔을 때 화사하게 웃으면서 시나리오 너무 재밌게 봤다고 하더라. TV에서 제가 못 봤던 모습이었다. 활짝 웃을 때 사랑스러운 모습과 웃지 않은 무표정 일 때의 갭이 너무 좋더라. 토일이도 평소에 잘 웃는 사람은 아니다. 하지만 귀여운 면이 없는 인물은 아니니까. 수정 씨도 보통 사회적 기준에서 귀여운 여자상으로 분류되지는 않지 않냐. 그 이미지가 정말 좋았다. 토일이의 무모함과 엉뚱함을 수정 씨를 통해서 보여주면 너무 매력적일 것 같았다. 흥미로운 여자 캐릭터가 나올 거라 확신했다. 정말 만족한다"라고 말했다.

'소공녀' 미소, '82년생 김지영' 지영, '정직한 후보' 상숙, '야구소녀' 수인 등 최근 몇 년 동안 극장가에서는 자신의 목소리를 또렷하게 내는 여성 캐릭터들이 큰 사랑을 받아왔다. 이러한 흐름 안에서 '애비규환'의 토일이 역시 기존 사회가 규정짓던 여성상에서 벗어난 또 다른 캐릭터로 관객들에게 새로운 자극을 선사한다.

여성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한 이유에 대해 최 감독은 "여자 캐릭터로 할 수 있는 이야기가 더 많다고 생각했다. 제가 다룰 수 있는 이야기는 그랬다. 그리고 (여성 캐릭터가 주인공일 때) 제가 좀 더 재밌게 쓸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렇게 설정했다"라고 설명했다.

'애비규환'의 주인공 토일은 소위 말하는 '요즘 여성'이다. 누구보다도 자신을 사랑하는 동시에 치열하게 내면을 들여다보며 결정을 내리고 그에 따를 결과와 책임을 끊임없이 고민하는 인물. 최 감독은 토일을 통해서 어떤 여성상을 보여주고 싶었던 걸까. "다른 사람의 비위를 안 맞춰도 되는 젊은 여자요. 다른 사람의 비위를 맞춰줄 필요가 없다고 느끼고, 예쁨 받지 못하는 것에 대해 두려움이 없는 사람을 표현하고 싶었어요. 내가 좋으면 좋은 거고, 내가 싫으면 그만인 자존감이 높은 그런 사람이요."



'애비규환'만의 매력은 전형성을 타파하는 점이다. 요리, 빨래, 설거지를 하는 남편의 모습, 운동장에서 축구하는 여자 학생들 등 영화 곳곳에 성 역할 고정관념을 벗어난 장면들도 돋보인다.

"어느 정도 생각을 하고 그런 부분들을 설정하긴 했어요. 남자들이 집안일을 하는 모습들이 자연스럽게, 별 거 아닌 것처럼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런 장면들을 생각보다 눈여겨 봐주시고 좋아해 주시더라고요. 되게 기뻤어요. 운동장이 배경인 장면도 나오는데, 뭔가 심심하니까 어떤 모습이 좋을까 생각하다가 여자 학생들이 축구를 하는 모습을 담았어요. 남녀 공학인 학교에서는 주로 남학생들이 운동장을 다 차지하고 있잖아요. 여자 학생들이 운동장을 뛰어다니고 누벼가고 있는 그런 모습들이 큰 의미 없이 자연스럽게 일상적으로 보이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또 하나의 흥미로운 설정은 임산부 토일(정수정)이 임신 후 오직 도토리묵만 먹는다는 것. 영화를 보고 나면 도토리묵의 숨은 의미에 대해 궁금해진다. 최하나 감독은 앞서 토일이 도토리묵만 먹는 설정에 대해 "그냥 제가 좋아하는 음식이다. 별 다른 의미가 없다"라고 밝힌 바 있다. 이에 대해 다시 되묻자 최 감독은 "의미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 못했다"라고 말했다.

"어쩌다 영화 한 줄 평을 봤는데, '가족이 어떻게 그렇게 완벽할 수 있겠어? 도토리묵 같은 건데. 도토리묵처럼 물렁물렁한 건데. 단단한 게 아닌데'라는 글이 있더라고요. 그 글을 보고 '난 왜 이 생각을 못했지?'라고 생각이 들더라고요(웃음). 그래도 감독이 정답지, 해설지처럼 만들어 놓는 건 별로인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 저는 그래요. 보시는 분들마다 각자 생각나는 대로 의미 부여를 해주시면 더 재밌을 것 같아요."

개성 넘치는 토일(정수정)의 부모, 시부모를 매력적으로 그려낸 배우 장혜진, 최덕문, 이해영, 강말금, 남문철에 대한 감사의 인사도 잊지 않았다. "선배들에게도 의지를 많이 하면서 촬영을 했어요. '어떻게 하면 이 신이 더 좋아질까?'를 같이 고민해주셨던 순간들이 정말 좋았어요. 정말 많이 배웠어요. 제가 주눅 들지 않게, 존중해주셨죠. 이런 분들과 함께 작업을 해서 기뻐요. 좋은 배우들을 만난 건 큰 행운이라고 생각해요"

끝으로 최하나 감독은 "눈여겨봐줬으면 하는 관전 포인트는 대구 학생들이다. 대구 연기 학원에서 오디션을 보고 직접 뽑은 연기 지망생들인데 정말 잘해줬다. 짧은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디테일하게 대본을 짜 왔더라. 그분들의 연기를 정말 신나게 지켜봤다. 그 친구들에게 너무 고맙다"라고 말했다.

[더셀럽 박수정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리틀빅픽쳐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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