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꼰대인턴’ 고건한의 소신, 이름 그 자체로 기억될 미래 [인터뷰]
입력 2020. 07.02. 16:31:04
[더셀럽 최서율 기자] 때로는 무모하게, 때로는 진중하게 연기 열정을 펼치고 있는 배우 고건한이 있는 그 자체로의 ‘고건한’으로 기억되고 싶다는 소신을 전했다.

최근 서울 강남구 논현동에 위치한 더셀럽 사옥에서는 지난 1일, 12부작을 끝으로 종영한 MBC 수목 드라마 ‘꼰대인턴’(극본 신소라, 연출 남성우)에 출연한 고건한의 인터뷰가 진행됐다.

‘꼰대인턴’은 최악의 꼰대 부장을 부하 직원으로 맞이하게 된 한 남자의 통쾌한 갑을 체인지 복수극이자 시니어 인턴의 잔혹 일터 사수기를 그린 코믹 오피스물이다. 극 중 고건한은 ‘미워할 수 없는 현실형 꼰대’이자 준수식품 마케팅영업팀 입사 7년 차 대리인 오동근 역을 맡아 많은 사랑을 받았다.

“12부작이라서 짧게만 느껴지고 너무 좋은 선배님, 동료 배우들과 같이해서 그런지 끈끈함이 그리워져요. 카톡방이 따로 있어서 매일 아침 응수 선배님께서 나무, 꽃 등 자연 풍경들을 업데이트해 주시죠. 그 메시지들을 보면서 ‘하루가 시작되는구나’를 느껴요.”

‘꼰대인턴’ 속 오동근은 굉장한 ‘투 머치 토커’다. 남들을 평가하거나 몰아가는 일에도 밝아 시청자들 사이에서 ‘우리 회사에는 절대 없어야 할 선배’로 꼽히기도 했다. 고건한에게 오동근과의 싱크로율을 묻자 그는 단번에 “아주 다르다”고 답했다.

“오동근과는 2.4% 또는 3.8% 정도밖에 닮지 않았어요. 거의 반대라고 생각해도 될 만큼 말수도 적고 누구 평가하는 걸 굉장히 싫어해요. 누구한테 지적이나 이런 걸 해 본 적도 없고 아예 타인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는 걸 힘들어해요.”

‘투 머치 토커’인 오동근이지만 한 가정의 가장이기도 한 그는 그 책임감을 다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하는 인물이다. 지난해 5월 종영한 MBC ‘특별근로감독관 조장풍’(이하 ‘조장풍’)의 김선우 역에 이어 또 다시 가장 역할을 맡게 된 고건한은 역할만으로도 가장의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며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조장풍’ 때 선우 역할은 현실감이 주는 무게가 워낙 무거워서 접하기가 어려웠죠. 오동근은 선우보다 자식이 더 많지만 캐릭터가 가지고 있는 본연의 가벼움, 유쾌하고 재미있는 성격 등에 포커스가 더 잘 맞춰져서 그런지 쉽게 접근할 수 있었어요. 그래도 아직 가장 역할에 적응하지는 못했어요. 경험이 없다는 건 배우에게 있어 가장 큰 어려움인 것 같아요. 어떤 일을 했을 때는 그 느낌을 간직하고 있는데 가장은 제가 경험하지도 못했고 생각만 해도 벅차니까요. 가장들의 무게를 상상만으로 느끼기에는 한계가 있는 거죠.”

‘꼰대인턴’ 촬영장에는 박해진(가열찬 역), 이만식(김응수 역) 등 기라성 같은 선배들이 많았다. 고건한 역시 지난 2011년 연극 ‘안티고네’로 데뷔해 올해 9년 차가 되는 베테랑 배우지만 그보다 더 많은 경험을 가진 선배들과의 촬영이 부담으로 다가왔을 수도 있다. 이에 고건한은 “꼰대력 제로의 선배들”이라며 운을 뗐다.

“일단 응수 선배님은 정말 젊으세요. 사고하시는 거나 행동이 굉장히 젊으시죠. 응수 선배님을 제외하고는 모두 젊은 배우인데 (선배님께서) 모든 배우들이랑 세대 차이나 이질감 없이 두루 잘 지내세요. 촬영하시기 전부터 그런 분위기를 만들어 주셔서 전혀 부담감 없이 촬영할 수 있었어요. 연기적 조언도 거의 없었어요. 정말 필요한 아이디어가 생기면 제안하시지만 거의 늘 지켜봐 주시는 스타일이세요. 해진 형님 또한 꼰대력 제로예요. 늘 같이하는 사람을 먼저 배려해 주세요. 먼저 의견을 묻고 ‘넌 어떠니’ 하시면서 소통해 주셔서 연기하는 데 있어 굉장히 많은 도움을 받았어요.”

‘꼰대인턴’의 가장 중요한 화두는 역시 ‘꼰대’다. 현재 사회를 관통하는 큰 주제들 중 하나인 ‘꼰대’를 포커싱해 작품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꼰대인턴’은 중요한 지점을 차지할 수밖에 없다. ‘꼰대’에 대해 고건한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

“꼰대는 가볍게 말하자면 했던 말을 계속 반복하는 사람인 것 같아요. 분명 했던 말인데 반복하는 거죠. 조금 더 진지하게 말해 보자면 다른 사람의 말을 수용하지 않고, 누가 봐도 이건 변화시켜야 하는 부분들인데 예전의 것들로 인해서 하나만 고집하는 걸 보면 꼰대 성향이 있는 걸로 보여요. ‘꼰대인턴’은 메시지보다는 ‘꼰대’라는 상징성을 사람들이 어떻게 받아들이는지가 더 중요했던 드라마라고 생각해요. 꼰대를 유쾌하게 풀면서 위안과 여유를 제공하는 거죠.”

영화 ‘수성못’의 병수, 드라마 ‘조장풍’ 김선우, ‘조선로코 녹두전’ 연근, ‘꼰대인턴’ 오동근 등 매 작품마다 변신을 시도하며 대중의 시선을 사로잡았던 고건한은 누가 봐도 연기적 내공이 상당한 배우다. 차곡차곡 배우의 길을 준비했을 것 같은 그는 예상외로 고등학교 3학년, 입시를 앞두고 돌연 연극영화과 진학을 결정한 배포의 소유자다.

“중학교 2, 3학년 때 친구들과 ‘살인의 추억’을 극장에서 보고 나왔는데 비가 엄청 내렸어요. 그때 택시 안에서 수다를 엄청 떨었는데 문득 입시 때 비 내리던 그날의 기억이 떠오른 거죠. 원래는 경영학과에 진학하려 했는데 ‘살인의 추억’을 봤던 그때의 기억 때문에 입시 학원도 못 다니고 연극영화과에 지원을 했어요. 담임 선생님께서 아주 놀라셨죠. 부모님께서는 제가 너무 갑작스럽게 지원을 하니까 무방비 상태에서 받아들이셨던 듯해요. 교수님께서도 입시 준비가 안 돼 있었던 저의 무모함을 보시고 합격시켜 주신 게 아닐까 싶어요. 얻어걸린 거죠.”

어느 날 갑자기 떠오른 ‘살인의 추억’을 계기로 배우의 길을 걷게 된 고건한은 여전히 ‘살인의 추억’을 가장 좋아하는 작품으로 꼽았다. 그러면서 봉준호 감독, 송강호에 대한 존경심을 넌지시 표현했다.

“여전히 ‘살인의 추억’을 가장 좋아해요. 지금까지도 봉준호 감독님 영화 대부분을 좋아하고요. 또 송강호 선배님 영화도 좋아하죠. 대한민국에서 송강호 선배님은 누구나 인정하는 국민 배우시잖아요. 선배님에게서 좋은 점을 계속 찾으려 해요.”

연신 진중한 태도로 인터뷰에 집중하던 고건한은 그가 과거 ‘소스페소(sospeso)’와 같은 인생을 살고 싶다고 말했던 게 아직도 유효한지에 대해 질문하자 쑥스러운 기색을 드러냈다. ‘소스페소’는 ‘연기된’ ‘미루어진’ ‘미정’ 등을 뜻하는 이탈리아어로 커피를 마실 여력이 없는 익명의 사람들을 위해 커피 한 잔의 값을 더 계산하는 활동을 뜻하는 용어로 통용된다.

“스무 살 때쯤에 책에서 ‘소스페소’라는 문구를 봤어요. 그 말이 나오게 된 이야기가 참 좋았고 그렇게 살 수 있다면 ‘잘 살았다’는 생각이 들 것 같았죠. 지금도 그렇게 살고 싶다는 바람은 유효해요. ‘소스페소’라는 문구를 처음 본 스무 살 때부터 지금까지 메신저 상태 메시지가 소스페소로 돼 있어요. 바꾸지 못한 거죠. 그렇게 살고 싶으니까요.”

차기작에 대해 고건한은 아직 구체적으로 결정된 바가 없다고 말하면서 이제야 드라마의 재미를 알게 된 것 같다고 밝혔다. 그는 장르를 가리지 않고 어떤 형식의 드라마에든 도전하고 싶다는 뜻도 함께 전했다.

“이제 드라마에 대한 재미를 슬슬 아는 단계예요. 현장에서의 즐거움을 알고 있고 드라마만의 피드백들, 장르적인 재미도 느끼고 있죠. 이 재미를 더 찾고 싶어요. 아직 드라마에 대한 경험이 부족한 것 같아요. (작품을 고르게 된다면) 소소한 우리의 이야기들을 그리는 작품이라면 다 좋을 것 같아요. 사실 장르를 가리지는 않아요. 아직도 계속 뭔가를 해야 하는 시기고 어떤 경험이든 그게 얼마나 중요한지 느끼고 있으니까요.”

‘꼰대인턴’은 종영 전까지 수목극 1위의 자리를 내내 지키며 화제를 모았다. 그 화제성에 힘입어 연말 시상식 무대에서 좋은 결실을 맺고 싶은 마음이 고건한에게도 있지 않을까.

“‘조장풍’ 때 제가 집에서 시상식을 봤어요. 김동욱 형님이 대상을 타셨고 작가님께서도 상을 받으셨죠. 그것만으로도 대리 만족이 됐어요. ‘꼰대인턴’도 마찬가지예요. 작품으로 누군가 상을 받게 되면 그걸로 충분할 만큼 좋은 작품이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누가 됐든 드라마팀에서 좋은 결과가 나온다면 무한히 축하해 주고 싶은 마음이에요.”

겸손함을 잃지 않는 배우인 고건한은 어떤 수식어를 가진 배우가 아닌, ‘고건한’으로 대중들에게 기억되고 싶다는 희망을 언급했다.

“고건한이라는 이름 그 자체를 시청자분들께 자연스럽게 알리고 싶어요. 그게 더 필요한 것 같아요. 오동근이라는 역할을 고건한이라는 배우가 했구나, 어떤 역할을 고건한이라는 배우가 했구나 그렇게만 돼도 좋지 않을까 싶어요. ‘고건한이었구나’ ‘고건한이었지’가 더 와닿는 시점이에요.”

[더셀럽 최서율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김혜진 기자, 스튜디오HIM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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