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퍼즐] 영화 100년 얼려버린 ‘겨울왕국 2’
입력 2019. 11.26. 13:57:56
[더셀럽 윤상길 컬럼] 올해는 1919년을 기점으로 한국영화가 탄생 100주년을 맞는 해이다. 이를 계기로 모든 영화인이 ‘세계가 주목하는 영화 강국 한국’이란 자부심을 갖고 이런저런 축하 행사를 벌이고 있는데, 미국영화 1편이 이 축제 분위기를 한방에 꽁꽁 얼려버렸다. 실사영화도 아니고, 게다가 속편인 애니메이션 영화 ‘겨울왕국 2’가 한국영화 100년 역사를 다시 기록하게 만들었다.

지난 21일 개봉한 ‘겨울왕국 2’는 스크린 점유율 88%, 상영회수 16,220회(23일 기준)를 기록, 한국 영화관 사상 최고 상영회수 기록을 갈아치웠다. 국내 430개 전 극장에서 이 영화가 상영 중이며, 극장 당 6개 스크린을, 전국의 스크린 10개 중 9개를 ‘겨울왕국 2’가 차지하고 있는 셈이다. 종전 상영회수 기록은 ‘어벤져스: 앤드게임’의 13,397회이었다.

이 믿기 어려운 기록을 두고 영화분석전문가인 하하필름 이하영 대표는 그의 SNS에 “극장들이 미쳤다. 불가능해야할 수치가 나오고 말았다. 여기까지 왔으면 이제는 구제불능, 치료 불가요, 회복 불가능”이라고 한국 영화에 사망선고를 내렸다.

‘한국영화 100년 축제’에 찬물을 끼얹고, 한국영화의 앞날을 지옥으로 이끈 저승사자는 ‘겨울왕국 2’를 제작한 할리우드의 공룡 ‘디즈니’. 제작사의 공식 명칭은 ‘월트 디즈니 픽처스’와 ‘월트 디즈니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이다. 한국 수입 배급은 ‘소니 픽쳐스 릴리정 월트 디즈니 스튜디오스 코리아’란 긴 이름의 한국 현지 법인이 맡았다.

‘겨울왕국 2’는 24일 현재 4,437,903명의 관객 수를 기록, 1일 평균 100만 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하고 있다. 스크린 독점이 가져온 현상이다. 당연히 한국영화는 뒷전으로 물러앉을 수밖에 없다. 어느 극장을 찾아도 온통 ‘겨울왕국 2’ 간판만 보일 뿐이다. 한국 기업이 운영하고 있는 극장들이 지금 관객들에게 외국영화 단 하나만의 편식을 강요하고 있는 모양새다.

그동안 관객에게 사랑받았던 한국영화 ‘블랙머니’, ‘신의 한수: 귀수편’, ‘82년생 김지영’ 등은 ‘겨울왕국 2’ 상영관 한 귀퉁이에 매달려 인공호흡으로 연명하고 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이들 영화조차 “이번 주를 넘기기 어려울 것”이란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모든 극장들이 다양성을 찾는 척하지만 그들에게 있어 다양성은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현실로 입증되고 있다.

위기의식을 느낀 영화인들은 극장의 독과점을 규탄하고 나섰다. ‘영화다양성확보와독과점해소를위한영화인대책위’는 22일 기자회견을 열고 스크린 독과점과 관련해 “영화법 개정이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겨울왕국 2의 스크린 독과점은 ”다양한 영화 관람을 원하는 관객들의 선택권을 침해하고 한국영화의 다양성을 저해하는 바람직하지 못한 행태다”라고 비판했다.

이들은 또 “‘겨울왕국 2’의 스크린 독과점으로 동시기에 개봉한 한국영화들이 무너지고 있는 등 영화계 생태계가 심각하게 파괴되고 있다”라며 “이를 막기 위해서는 영화 한편 상영 비율이 전체 스크린 3분의 1을 넘지 않아야 한다.”라고 강력 주장했다. 하지만 관객은 여전히 ‘겨울왕국 2’를 사랑하고 있다. 예매율 90%를 넘기며 한국영화를 외면하고 있다.

스크린 독과점 문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국내 스크린의 92%를 차지하고 있는 CGV, 롯데시네마, 메가박스 등 대기업 계열 극장들의 시각이 수정되지 않는 한 이 문제는 결코 해결되지 않는다. 이들 극장들은 우리나라 영화산업 매출 총 2조3000억 원(2018년 기준) 중 80%를 차지하고 있다. 대기업 극장들이 단기간에 하나의 영화를 집중 상영해서 과도한 수익을 창출하려는 욕심을 버리지 않는 이상 영화인들의 구호는 ‘연목구어’(緣木求魚)에 지나지 않는다.

독과점이란 하나의 기업이 시장을 점유하고 있는 상태인 독점과, 두 개 이상의 기업이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과점을 아울러 이르는 말이다. 즉, 공정거래법상으로 1개 사업자가 50% 이상의 시장 점유율을 확보하게 되면 독과점으로 본다. 공정거래법 상 ‘겨울왕국 2’가 보여준 수치는 독과점 금지법에 해당된다.

문제는 예술문화 상품과 산업을 꼭 ‘법’의 잣대로 진단해야 하는가에 있다. 그보다는 영화산업계 전체가 하나의 공동체라는 개념에서 탈출구를 찾아야 한다. 영화인은 물론 영화 제작자, 극장 사업자, 관련 행정가들이 한 공동체 의식을 지녀야 한다.

공동체는 약자를 위해 존재한다. 아기를 돌보는 가정처럼, 힘을 합쳐 약자를 돌보는 가운데 공동체는 결속력을 얻는다. 저예산 영화, 독립영화, 제3세계 영화 등 다양성 영화도 영화 공동체의 일원으로 받아들이고 보호해야 한다. 영화계의 약자인 작은 영화들을 극장이 외면한다면 예술로서의 영화계는 위축되기 마련이다.

극장의 독과점에 내심 두려움을 느끼는, 자본의 눈치만 보는 영화 관계자는 약자에게 손을 내밀지 못한다. 그들은 스스로를 약자로 규정하고 저도 모르게 방어 모드가 된다. 그렇게 영화 공동체의 약한 고리를 방치하는 영화계는 지금처럼 결국 제 무덤을 파고 만다.

극장이 영화를 통해 자본을 축적한다면, 그들은 영화의 다양성, 즉 작가주의 영화가 지닌 예술적 가치와 향기를 관객에게 알려줄 아량을 지녀야 한다. 다양한 영화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안목을 스스로 갖도록 스크린을 개방해주어야 한다. 그들이 영화 공동체의 일원이라면 그렇게 해야 한다.

극장은 분명 문화공간이다. 문화의 본질은 약자의 목소리를 듣는 데 있다. 지금 영화인들은 극장에게 그 귀를 열어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문화는 소수자들이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을 때, 그 소리를 들어줄 때 비로소 꽃을 피운다. 다양성 영화들이 담고자 하는, 제3지대, 낮은 곳, 소외된 이들의 눈에만 보이는 것들이 있기 때문이다. 문화가 다양성을 토대로 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영화는 산업 이전에 문화의 영역에 존재한다. 이제 영화는 산업의 시대와 어깨동무하며 문화의 시대도 열어야 한다. 일찍이 백범 선생이 꿈꾼 문화강국으로 가는 길은 문화예술인들의 몫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몫이다. ‘겨울왕국 2’의 지나친 독과점 현상이 우리에게 던져주는 교훈이다.


[더셀럽 윤상길 칼럼 news@fashionmk.co.kr / 사진=영화 '겨울왕국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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