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PUNCH] ‘포에버21’이 던진 경고장, 시한부에 들어간 SPA
입력 2019. 10.17. 11:05:47
[더셀럽 한숙인 기자] 포에버21은 한국 이민 역사의 신화다. 남대문 시장에서 막대한 부를 축적한 도매시장 상인들의 ‘부자 신화’는 미국 로스앤젤레스 자바시장으로 이어졌다. 이처럼 한국 도매시장 신화와 연결점을 갖는 포에버 21이 지난 9월 미국 델라웨어주 연방파산법원에 파산법 11조(챕터 11조)에 따른 파산보호신청을 냈다.

포에버21의 파산신청을 몸집 불리기에 실패한 외국 SPA의 실패사례로 단순화하기에는 가슴 한편이 찌릿해 온다. 그러나 포에버21의 파산신청은 이 같은 민족주의적 관점에서 벗어나야 의미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다.

포에버21의 파산신청은 SPA의 성장과 생존의 근간인 ‘양의 시대’의 종말이 이제 현실이 됐음을 입증하는 사례로, 결코 가벼이 넘겨서는 안 된다.

1981년 설립된 포에버21은 ‘갭’으로 대표되는 미국식 실용주의를 근간으로 하는 저가 베이식의 판을 깨고 미국을 대표하는 패스트 패션으로 오랜 시간 군림해왔다. 장도원 장진숙, 한국인 부부에 의해 운영돼온 포에버21은 ‘자라’ ‘톱숍’ ‘망고’ 등 전 세계 매스마켓을 장악하던 유럽 태생의 SPA 브랜드에 대응하는 미국 태생 SPA 브랜드라는 점에 미국인들의 지지를 받으며 성장가도를 달렸다.

패스트 패션은 단어 의미 그대로 빠른 패션으로 ‘입고 버린다’는 의미가 내제돼있다.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짧아진 ‘유행 주기’에 맞추기 위해 개인파산까지 날 정도의 위험을 감수하기보다 필요할 때 사서 한 두 번 입고 싫증나면 버릴 것을 권고한다.

이런 논리가 근간을 이루는 만큼 패스트 패션의 생산 논리를 지향하는 SPA브랜드는 완성도보다는 ‘다품종 다량’을 쏟아내는데 급급해 상품이 조악하고 생명주기가 짧아질 수밖에 없다. 이로 인해 SPA 브랜드는 탄소 발자국(carbon footprint) 수치가 높아 지구 온난화의 최대 적인 다량의 이산화탄소를 발생하게 하는 주범으로 지목되고 있기도 하다.

환경전문가와 단체들의 비난이 쏟아지면서 자체 정화 노력 일환으로 ‘지속가능한 패션’ 캠페인을 펼치기도 하지만, SPA의 근간인 다품종 다량 시스템에서 이는 ‘이미지 마케팅’ 이상의 의미를 갖지 못한다.

포에버21은 낮은 질의 ‘초저가’ 상품을 생산해 ‘입고 버린다’는 패스트 패션의 개념을 충실히 이행해왔다. 다품종 다량 생산 시스템은 성장을 위해서는 역시나 ‘다량’의 매장을 필요로 한다.

이는 “6년도 안 되는 기간에 7개국에서 47개국으로 뻗어갔는데 그 때문에 많은 문제가 생겼다”라는 장진숙 부회장이 최근 인터뷰 내용에서 언급한 공격적 유통망 확장이 포에버21에서만 발생한 판단 착오로 국한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포에버21의 파산신청은 패스트 패션의 생산 시스템 뿐 아니라 자신을 남과 구별하는 소비자의 개별화 욕구를 보장하지 않는다는 점 또한 태생적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포에버21은 당장의 ‘일시적’ 필요 욕구는 충족하지만 자신의 정체성의 표현으로서 ‘중장기적’ 지속 효과는 기대할 수 없다.

‘포에버21’ 성장기인 2000년대 초반에 뉴욕에서 30대 초반을 보낸 한 여성은 “아침에 입고 나온 옷에 뭐가 묻었을 때, 아침까지 예정에 없던 모임이나 파티에 갑자기 가야할 때 ‘포에버21’에 가서 옷은 물론 신발과 액세서리까지 몸 전체를 ‘튜닝’했다. 당시 프리랜서로 일 하면서 힘들게 학비와 생활비를 충당해야 하는 상황이었음에도 전혀 부담스럽지 않은 가격이었다”라며 당시를 회상했다.

그러나 그렇게 3, 4년을 뉴욕에서 보낸 후 한국에 돌아온 그는 다시 일을 시작하면서 ‘포에버21’ 매장에 더는 발을 들여놓지 않았다.

이처럼 ‘포에버21’을 비롯한 SPA 브랜드는 ‘어쩔 수 없어서’일뿐 ‘좋아서’가 아니라는데 한계가 있다. 더욱이 최근에는 ‘소품종 소량’으로 무게를 줄인 중가의 디자이너 레이블 브랜드들이 쏟아져 나오면서 SPA 브랜드의 ‘최소한의 가치’마저 위협당하고 있다.

이는 민족주의 관점으로서 포에버21의 태생의 근간이라 할 수 있는 한국 도매시장 상황을 보면 더욱 명확하게 드러난다. 최근 가장 잘 나가는 도매상가로 알려진 동대문에 위치해 있는 ‘에이피엠 플레이스(apm place)’는 디자이너 레이블의 가치를 지닌 브랜드들이 지하 2층에서 지상 8층의 총 10개 층을 채우고 있다.

이들 역시 다품종 다량이 아닌 자신들의 강점을 내세운 아이템이 집중하고 디자인은 물론 품질의 완성도를 높여 도매상가의 패러다임을 뒤바꿨다.

한국 소비자들이 SPA를 외면하기 시작한지 오래다. SPA의 주요고객층이었던 20대는 그나마 상품에 좀 신경 쓰는 중저가 SPA 브랜드는 결코 싸다고만 할 수 없는 애매한 가격에, 가격을 충족하는 저가 SPA 브랜드들은 아무리 가격이 싸다고 해도 도저히 손이 가지 않는 품질에 거부감을 드러낸다.

SPA 브랜드들이 존속을 위해서는 체질개선이 필요하다. 그러나 유명 디자이너들과 협업한 리미티드 에디션, 지속가능한 패션 캠페인, 브랜드 다각화 등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한 그들이 선택할 수 있는 또 다른 ‘생명 연장 카드’가 있을지 궁금하다.

[한숙인 기자 news@fashionmk.co.kr/ 사진=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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