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퍼즐] 고전하는 TV예능, ‘꽃할배’만 기록 경신 중
입력 2018. 08.06. 09:48:18
[시크뉴스 윤상길 칼럼] 이른바 ‘특화’로 표현되는, 특정 계층을 대상으로 만든 TV 예능 프로그램은 대체로 시청률이 저조하다. 마니아층이거나 특정 사안에 대해 관심을 가진 시청자를 겨냥하기 때문에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다. 종합편성채널과 케이블방송 등 매체 증가에 따른 특화 프로그램 붐 현상이 가져오는 당연한 결과다. 그 소재가 가상이든 현실이든 그렇다. 시청률 2~3%를 넘기기 어렵다.

예를 들자면 지난해 말 방송된 JTBC 오디션 프로그램 ‘믹스나인’은 1%대를 맴돌다가 올해 초 들어서는 14회차에 0.987%(닐슨코리아)를 기록하며 폭망했다. 국내 최대 기획사 중 하나인 YG가 제작하고, 그 수장인 양현석이 진두지휘에 나섰지만 빈 수레의 덜커덩 소리만 남겼다. YG라는 한 회사와 양현석이란 한 기획자에만 의지한 데에다, 아이돌그룹 멤버 선발이란 특정 계층을 상대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tvN의 ‘갈릴레오 : 깨어난 우주’가 시청자의 외면을 받고 있다. 지난 7월 15일 첫 방송이 1.363%를 기록했으나 방송 2회부터 0%대로 급락했다. 국내에 단 한 번도 공개된 적 없는 MDRS(미국 유타주 화성탐사연구기지)에서의 ‘화성 인간 탐사’와 ‘인류 생존’에 도전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예능 프로그램으로 신선함과 차별성으로 승부수를 던졌으나 별다른 반응을 내지 못했다. 재미는 물론 감동조차 주지 못한 탓이다.

TV의 예능 오락 프로그램은 철저하게 ‘상업적’이어야 한다. 어쭙잖게 메시지를 담으려 한다면 ‘갓 쓰고 도포 입고 오토바이 타는 격’이다. 같은 영상 매체라도 영화와 다른 점이 여기에 있다. TV는 시청률에, 영화는 관객 수로 쪽박과 대박을 구분하지만, 독립 예술영화의 경우 동원관객은 별로라도 강렬한 작가의 메시지를 전달함으로 그 사명을 달성한다. TV 예능 프로그램이 저조한 시청률을 ‘메시지’로 포장해서는 안 되는 이유이다. 이런 상황에서 tvN 예능 프로그램 ‘꽃보다 할배 리턴즈’(연출 나영석, 이하 ‘꽃할배’)가 보여주는 기록은 경이롭다.

지난 6월 29일 첫 방송을 탄 ‘꽃할배’는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에 1위를 내주기 전까지 시청률 종합 순위에서 줄곧 정상을 유지해왔다. 현재 종합 순위는 2위이지만 장르별 예능 부문에서는 부동의 1위에 자리하고 있다. 시청률은 8~9%대를 유지하고 있다. 특정 계층이 출연하는 특화된 프로그램이라고 믿기 어려운 기록이다. 지상파도 종편도 아닌 케이블 방송으로서의 핸디캡을 극복한 ‘꽃할배’의 저력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궁금하다.

‘꽃할배’는 ‘황혼의 배낭여행’을 콘셉트로 한 여행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이다. ‘할벤저스’(H5)로 불리는 5명의 할아버지 배우들이 출연한다. 이순재(85), 신구(83), 박근형(79), 백일섭(75), 김용건(73), 평균 나이가 여든 살에 가깝다. 지팡이에 의지해 공원이나 산책할 나이이다. 그렇다고 청소년에게 ‘스타파워’를 지닐 만큼 오늘날의 톱스타도 아니다. 여기에 이서진(48)이 짐꾼으로 가세하지만, 그는 조연 역할에 지나지 않는다.

높은 시청률을 견인할 요소가 별로 없는 듯 보이는 ‘꽃할배’이다. 이를 두고 문화평론가인 김정겸 교수(한국외국어대)는 “평범함 속의 특별함, 무의미하게 보이지만 외길을 걸어온 어른들의 무게가 담겨 있기 때문”이라고 요약한다. 송차선 신부(서울대교구 석관동본당 주임)가 그의 저서 ‘곱게 늙기’에서 “구태의연한 사고방식만 주장하는 ‘꼰대’가 아니라, ‘품위 있는 권위’를 갖춘 소통하는 어른이 되어야 한다.”라고 조언한 그대로이다.

‘꽃할배’가 노년층만 아니라 청소년층 시청자에게도 환영받는 이유는 세대간의 ‘다름’이 아니라 ‘같음’에 있다. 한때 유명한 스타배우였음에도 불구하고, 방송에 등장하는 ‘꽃할배’들을 이웃집 동네 할아버지처럼 느끼게 하는, 계층 사이의 동질성 회복이 이뤄졌기 때문이다. 그들은 카메라를 의식하지 않고 분량 뽑으려고 오버하지도 않는다. 찍거나 말거나 하는 여유로운 모습들에 시청자들은 친밀감을 갖는다.

방송임에도 그들은 너무 자연스럽다. 체코에서 오스트리아에서 한 할배가 식사 메뉴로 라면을 찾으면 다른 할배도 덩달아 “나도 라면”을 주문한다. 짐꾼 이서진의 “밥도 있어요. 선생님”이란 애교 멘트까지, 마치 한국의 친구집에 놀러온 사람들처럼 일상의 모습들이 정겹다. 빡빡한 일정에 따라 쫓기듯 관광지를 찾지 않고 노상카페나 음식점에서 아이스크림을 먹거나 맥주 한잔씩 하는 모습들, 오며가며 사람들 구경하는 모습도 편하고 좋다.

오스트리아의 ‘사운드 오브 뮤직’ 촬영현장에서 그들이 보여준 것들, ‘도레미송’을 흥얼거리고, 영화의 내용을 완벽하게 기억해내고, 영화 속 연기를 재연해보이고, 50년 전 그 영화를 보았던 때를 회상하는 등의 모습에서 시청자들은 우리 부모 세대들을 떠올리며 공감하고, 이들 할아버지의 손을 잡고 리얼 예능 속으로 함께 여행을 떠나는 것이다.

‘꽃할배’ 시청자 게시판에 올라온 소감도 자연스럽고 진솔하다. “할배들 진정 보기 편하네요. 리얼예능의 정수”(최연*), “정말 의미 있는 프로그램이에요”(양지*), “나이 탓하며 게을러진 중년인 나에게 용기와 희망을 준 고마운 시간”(장은*) 등의 글이 올라와 있다.

‘꽃할배’는 예능 프로그램의 긍정적 요소를 모두 담고 있다. 편안함, 즐거움, 다름이 아닌 같음, 선배나 어른들의 소리 없는 가르침 등이다. 누구나 늙는다. 노년에 접어들면 주름은 깊어지고, 기력도 전 같지 않아진다. 생각과 태도도 굳어진다. 젊을 땐 남의 말에 귀 기울일 힘이 있었지만, 나이 들면 그것마저도 어려워진다. 오히려 ‘내 말’ 하기 바쁘다. ‘잘 늙는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게 아니다. 하지만 ‘꽃할배’는 ‘잘 나이먹음’이 무엇인가를 보여줌으로 모든 연령의 시청자에게 공감을 이끌어냈다.

젊은층을 대표하는 나영석 PD와 이서진 배우를 상대로 다섯 ‘꽃할배’들은 “젊은 것들이 뭘 알아? 당신, 몇 살이야?” 하고 나이를 내세운 적은 없다. 혹은 가진 것에만 집착해 두루 살피지 않은 적도 없다. 할배들은 또 젊은이들에게 정치ㆍ문화적으로 치우친 견해만 내세운 적도 없다. 그들에게서는 흔히 보이는 기성세대의 모습을 발견할 수 없다. “나이와 권위(인기)만 앞세운 ‘형식 권위’가 아닌, 정말 품위를 갖추고 존경받을 수 있는 ‘실질 권위’가 무엇인가를 보여주는 할배들이다.

우리는 죽을 때 무엇을 떠올릴 것인가. 두렵지만 한 번쯤 생각해볼 만한 질문이다. 지나온 삶을 돌이키는 순간 후회와 미련을 떠올리기보다는 가장 아름다웠던 순간, 사랑했던 모습들을 누구나 기억하고 싶어 한다. ‘꽃할배’들은 마지막 기억이 아름답도록 오늘을 더 사랑하고 음미하는 사람들이다. ‘꽃할배’를 응원한다.

[시크뉴스 윤상길 칼럼 news@fashionmk.co.kr/ 사진=tvN '꽃보다 할배 리턴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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